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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오늘은 1. 인조 소현세자, 2.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에 대하여, 3. 인조 가계도에 대하여 자세하고 빠르게 알아보러 가볼까요?
인조 소현세자 가계도
1. 조선 16대 왕 인조의 가계도
2.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17대 왕이 됐을까?
인조 소현세자, 부자 관계는 도대체 어떻길래 드라마 속에서 각색돼도 사람들이 믿기 힘든 걸까요?
우선 인조의 가계도부터 알아봅시다.
조선 16대 국왕 인조는 1595년에 태어나서 1649년에 사망했습니다.
인조의 부인으로 인열왕후가 있었고, 그녀는 1594년에 태어나서 1635년에 사망했습니다.
인조와 인열왕후 사이에는 6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첫째 소현세자, 둘째 효종, 셋째 인평대군, 넷째 용성대군, 다섯째와 여섯째는 자료가 없습니다.
첫째 아들, 소현세자는 1612년에 태어나서 1645년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부인으로 강빈이 있었는데, 그녀는 1611년에 태어나서 1646년에 사망했습니다.
소현세자와 강빈 사이에는 3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석철, 둘째 석린, 셋째 석견입니다.
할아버지 인조에 의해 제주도에 유배를 보내졌던 소현세자의 3명의 아들 중 첫째와 둘째는 그 당시 창궐하던 돌림병으로 인한 사망을 하였고,
막내 석견만이 살아남아 귀양까지 하게 됩니다.
인조의 바람과는 다르게 석견은 혼인도 하고 자녀를 낳았으며 그의 자손이 현재까지 많이 있습니다.
참고로 조선시대 마지막 국왕까지 인조의 뿌리였습니다.
조선 16대 국왕이었던 인조의 첫째 아들인 소현세자가 17대 국왕이 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현세자는 원래 왕위 가문이 아니었습니다.
인조는 쿠데타를 일으켜 반정으로 왕위를 찬탈했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원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역사는 객관적인 해석도 하고 주관적인 해석도 들어가기 때문에 제가 하는 말이 사실 그 자체는 아닙니다.
다만, 사실을 전해드릴 때는 객관적인 자료만을 알려드리고 저의 주관적인 사견은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감정표현같이 써놨으니 구분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다시 말씀드리자면, 인조는 인조반정을 일으켜 세운 왕위를 잘 이끌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소현세자가 왕세자가 된 후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역사상 가장 최악의 조선 국왕인 인조는 47일간 남한산성에서 농성을 벌였으나
각지의 군사령관을 자신의 측근만 기용한 탓에 제대로 된 군병력이 있을 리 만무했고
인조를 구출하러 근왕군마저 전쟁에 나섰지만 청나라 군대에 괴멸됩니다.
이후 인조는 오랑캐 장군에게 머리를 세 번 땅에 박고 항복하게 됩니다.
역사상 이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굴욕을 당했습니다.
이후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게 됩니다.
너무 자세하게 말씀드리기 길어져서 아래의 글로 안내드립니다.
(중간 생략)
이후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인질로 잡혀있었지만 조선의 세자로서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살다가 1645년 9년간에 인질 생활 끝에 귀국합니다.
조선에 남아 백성을 돌보는 인조를 바라보는 소현세자의 시선은 어땠을까요?
자신과 다르게 답답하게 청나라가 두려운 아버지를 보면서 소현세자는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인조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왕위를 무시하고 규율도 지키지 않는 소현세자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습니다.
국왕인 자신이 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랐던 인조가 기존의 조선을 비판하는 행보를 남기는 소현세자가 예뻐 보였을 리가 없었을 거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9년 만에 돌아온 조선의 세자, 소현세자가 이제 인조의 뒤를 이를 17대 국왕이 됐을까요?
인조 소현세자 독살 의심
1. 조선에 돌아온 지 3달이 지나지 않고 의문의 죽음
2. 인조의 장성한 첫째 아들이 다음 왕이 되지 못한 이유
인조 소현세자 사이는 언제부터 나빴을까요?
아니면 둘째 봉림대군이 지극히 효심이 뛰어나서 더 예뻐 보였던 걸까요?
조선 16대 국왕 인조는 소현세자가 9년 만에 돌아왔음에도 환영회나 귀국 잔치를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단지 축하한다는 교서를 발표할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경계를 하고 미워하기 바빴습니다.
아마도 청나라에서 자신과 다르게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소현세자를 보면서
조선의 국왕이지만 청나라를 두려워하고 있는 인조 자신의 모습과 비교가 돼서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소현세자는 귀국 후 3달도 되지 않고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조선 왕조 실록을 보면 독살로 기록되어 있고, 승정원일기를 보면 지병 악화로 기록되어 있어 후대손이 추정하는 길뿐입니다.
제 생각에는 인조의 결과물로 보입니다.
소현세자가 사망하고 난 뒤 17대 국왕의 자리를 인조는 자신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에게 넘겨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확인해야 할 것은 인조는 소현세자의 자손, 장남 석철이 원손이지만 세자로 책봉하지 않았습니다.
종법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신하들도 반대했지만 인조는 강경하게 자신의 둘째 아들에게 세자 자리를 줬습니다.
당시 원손 석철은 10살이었고 계속해서 군왕 교육을 받았던 터라 당연히 세자로 책봉될 순서였습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인조는 강빈 역시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소현세자의 아들들 모두 제주도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할아버지입니다.
인조 소현세자 처참한 부자사이
1. 청나라에 인질, 소현세자
2. 조선땅에 있지만 왕 노릇을 할 수 없는 인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조선의 16대 국왕 인조는 청나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난 뒤
청나라에 대한 적대심을 쉽게 낮출 수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소현세자는 청나라를 인정하고 잘 지내는 모습에 조선을 팔아먹을 왕이라고 혼자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소현세자도 인조가 조선에 있는데도 청나라에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조선 16대 국왕 인조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시다면
아래 바로 보기로 편하게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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